EXPERT SOLUTION
[고혜정]Aromatherapy의 ModalityⅠ

현대 아로마테라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역사 속에 자연스럽게 놓인 인간과 자연, 질병과 건강에 대한 관점, 그리고 이를 연구한 아로마테라피스트의 다양한 연구와 저서, 견해를 보다 보면 아로마테라피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그 미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서는 현대 아로마테라피 이전의 역사 부분을 살펴보자.

prologue
많은 문헌에서 밝혀진 바처럼 아로마테라피는 수천 년의 역사를 거쳐 발전해왔다. 그러나 에센셜 오일을 사용하는 현대 아로마테라피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매우 짧은 시간 이루어졌다. 1930년 ‘아로마테라피’라는 용어가 처음 만들어진 시점을 근거로 삼는다면 현대 아로마테라피의 역사가 90년이 조금 안 되는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수천 년 동안의 역사를 구성해왔던 아로마틱 식물의 사용과는 달리 현대 아로마테라피는 완전히 다른, 그것만의 특수한 분야를 구축하여 성장했기 때문에 그 기간의 차이점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본 글에서는 현대 아로마테라피가 태동하기 이전의 그 역사를 시간에 따라 살펴봄으로써 현존하는 Esotheric Aromatherapy, Medical Aromatherapy, Holistic Aromatherapy의 의미를 재인식하고자 한다.

신과 아로마테라피 : Esotheric Aromatherapy
BC 5000년경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디아 등지에서 발견된 파피루스 혹은 돌, 진흙으로 만든 판 등의 고고학 기록에 따르면 방향성(芳香性) 식물들이 종교적 성물과 약, 두 가지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에는 종교와 의료가 명확히 분리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신체적인 고통은 곧 신의 형벌이라는 믿음이 지배적이었다. 아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결국 신을 향한 간곡한 기도가 필요하다 생각했으므로 종교 사제들이 신에 대한 경배와 찬사를 통해 ‘치료’를 진행하였다. 신은 비가시적 존재로서 공기 중에 스며 있다고 느꼈던 이 시기의 고대인들은 이러한 ‘향’을 신의 호흡이 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방향성 식물들을 귀하게 여겼다.
특정한 방향 식물들의 의미는 곧 신적 존재와의 연결 수단이었으며 결과적으로는 정신적인 정화 개념과 연결되었다(예: 몰약-달의 신, 유향-태양의 신). 이렇게 특정한 향기는 신성성의 형상화된 이미지로 받아들여졌다. 아로마(aroma, 향)는 인간과 신성성 사이의 중요한 매개체로 점차 자리 잡기 시작해 기도와 같은 신과의 의사소통에서 필요한 영적 분위기를 만들어낼 때 사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교적 의식, 축제에서 사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측면은 여전히 Aromatherapy의 한 분야인 ‘Esoteric Aromatherapy’로 이어져 내려왔다. JoniKelm Loughran and Ruah Bull의 저서



자연과 아로마테라피 :
전인적 아로마테라피
BC 600년경부터 신에 대한 생각이 변하기 시작했다. 인간들은 신을 인간과 유사한 존재,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자연을 관찰하고 인간을 자연의 하나로 이해하는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건강을 자연의 원소들(흙, 물, 불, 공기와 퀸트 에센스 혹은 5원소인 에테르)과 인체를 구성하는 액체, 혹은 기질 사이의 조화로움에 두기 시작했다. 인간과 자연의 합일 의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인간의 신체도 자연을 구성하고 있는 위의 요소들과 동일하게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견해는 인간의 기질을 나누는 새로운 현상까지 불러왔다. 예를 들어 물의 성질이 많은 인간인지, 불의 성질이 많은 인
또한 인간들은 자연재해가 자 연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 중 한 가지가 과도해서 생긴 현상이라고 여겼 다. 당시의 개념 이해에 입각하여 인간들은 신체적 고통이 결국 자연재해처럼 자연의 구성 요소들간 불균형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고 믿 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생명력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그러한 높은 관심도가 인도, 중국의 의학서에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인도의 아율베딕 의학은 도샤dosas(vata, pitta, kapha)간의 조화와 프라 나(prana)의 흐름의 조화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흙, 물, 금속, 나무, 불의 5원소와 경략을 통한 기의 조화를 통하여 건강을 설명한다. 히포크라테스(BC5세기)와 갈렌(AD2세기)의 의료서에 이러한 견해가 더 잘 나타나 있다. 그리스인들은 이집트인들에게 다양한 것을 전수받아 식물 의학을 정립하고 그 특성과 분류 내용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수백 년에 그리스 의사 간인지를 나눠 기질을 구분하려고 한 것이다.Marestheus는 처음으 로 여러 꽃들의 향기가 자극 또는 진정 작용을 갖고 있음을 깨닫고 그를 분류 하였다. 그에 따 르면 히아신스와 장미는 리프레시와 활기를 주는 효과가 있으며 릴리(백합)과 나르시스(수선화)는 진정 효과를 갖고 있음이 밝혀졌다. 그리스 의사였던 Dioscorides은

히포크라테스는 460 B.C.에 그리스에서 태어났으며 질병이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발생한다는 이집트인들의 믿음을 처음으로 반박하였으며, 증상에 대한 관찰을 통하여 발병의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고자 했기에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히포크라테스는 300가지 식물에 관한 효과를 기록하고 오일이 갖고 있는 자극, 진정 효과에 대해서 인식하였다. 그는 건강해지는 방법으로 매일 아로마 목욕을 하거나 아로마 마사지를 하는 것, 혹은 아로마 훈증과 찜질을 말하기도 했다. 펜넬, 파슬리, 하이페리큠, 발레리안 등의 허브 인퓨전을 마사지에 사용하거나 내복하도록 처방했다. 그의 아로마 처방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미이르, 시나몬과 캐시아로 만들어진 메갈리온(megaleion)으로 이집트인들이 처방 받았던 카이피처럼 향수인 동시에 피부염증과 전쟁 상

용에 매우 사치스러운 경향이 있었다. 그들은 세 가지 종류의 향수를 주로 사용했는데 고체연고인 ‘ladysmata’, 향 유인 ‘stymmata’, 분말 형태의 향수인 ‘diapasmata’가 그것이다. 로마인들은 이러한 향수들로 모발과 의복, 침대에 방향 처리를 하였고, 목욕 후에 마사지를 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그러나 BC5에 로마 제국이 멸망하게 되면서 유럽에서는 더이상 에센셜 오일이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로마 제국의 몰락 후 대다수 로마의 의학자들은 히포크라테스(Hypocrites), 갈렌(Galen), 디오스코리데(Dioscorides)의 저서를 가지고 콘스탄티노플로 망명했다. 이러한 방대한 양의 그리스 로마 연구들은 페르시아어, 아랍어를 비롯한 다양한 언어들로 번역되어 유럽, 아랍으로 전해졌다. 이 시기가 전인적 아로마테라피의 개념이 시작된 시기라 할 수 있다.
증류와 에센셜 오 일
고대 방향성 물질은 지방이나 오일, 물이나 클레이 등을 이용해 추출하였다. 아로마틱 식물을 식물성 오일이나 동물성 지방에 담가 햇볕을 쬐어 우려내는 방법(infusion)을 사용하였다. 라틴어 이름인 아비세나(Avicena)로 잘 알려져 있는 Ibn Sena(Avicena-A.D980~A.D.1037)는 명성 있고 뛰어난 의사이며 이슬람-아랍제국의 과학자이자 학자였다. 11세기 아비세나는 아로마 증기를 응축시키는 냉각 코일(refrigerated coil)을 발명하여 증류 과정을 완성했고, 식물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겼다. 증류과정의 완성으로 인해 향수의 생산, 보관이 용이 해졌다. 이는 아랍과 페르시아 그리고 터키가 유럽인들이 열망하는 매력적인 향수를 만들어내는데 도움을 주었다.

르네상스-전인적 테라피의 재발견, 허 벌리즘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면서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전인적 테라피가 재발견되기 시작했다. 모든 질병마다 신이 치유의 식물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던 고대의 가치관이 다시 떠오르게 된 것이다. Paracelsus(1494-1541)은 이러한 가치관에 입각해 각각의 식물들이 갖고 있는 의약적 치유 성분들은 ‘Quintessence’라고 칭했고 이러한 성분의 생명력이 치유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었다. 1470년과 1670년 사이 다수의 허브, 허브 추출법, 약초 치료법에 관한 많은 저서가 나왔다. 17세기 영국의 니콜라스 컬페퍼(Nicholas Culpeper), 존 파킨슨(John Parkinson), 존 제라드(John Gerard)는 영국 허벌리즘의 전성기를 주도한 대표자들이다. 17세기 말에 들어서면서 프랑스 그라스 지방을 중심으로 향 증류 산업이 시작되었다.
과학의 발전, 자연과의 분리 : Holism에서 벗 어나다

19세 기 초, 화학의 급진적 발전으로 인해 화학자들은 처음으로 정유의 다양한 구성 성분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들은 제라니올(geraniol), 리나올(linaol)과 같은 특정한 이름을 붙이면서 이것들이 에센셜 오일의 전부라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에센셜 오일을 구성하는 특정 성분이 치유 효과 를 갖는다고 판단하고 그 성분만을 분리시켜 사용하고자 하면서 에센셜 오일의 전체적인 이해도는 상실되었고, 식물의 생명력에 대한 아로마테라피의 전인적 가치는 사라졌다. 향의 성분만을 분리하기 시작하면서 향수 제조업과 증류 산업은 유럽 북부, 특히 프랑스의 그라스 지방에서 성공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다음 호에는 현대 아로마테라피의 재발견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